영국의 진짜 '올드 머니'들이 사는 법

조회 : 33612 베른하르트 2023.10.18

갑자기 한국에 '올드 머니(Old Money)' 열풍이 분다고 한다. 소위 '조용한 명품(quiet luxury)' 유행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영어 단어인 '올드 머니'가 자주 쓰이는 모양이다. '심플한 멋을 추구하는 올드머니룩'이라는 정체불명의 문장이 한국 패션 잡지에도 등장했다.'올드 머니'는 아주 영국적인 단어다. 분명 영국에서 시작된 말로 우리말로 번역하려면 적당한 단어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거기에 비해 '올드 머니'의 반대어인 '뉴 머니(New Money)'는 우리 말로 완벽하게 번역이 된다. 바로 '졸부(猝富)'이다. 

조금 고상한 단어를 쓴다면 신흥 부자쯤 되겠는데, 어쨌든 정반대의 단어인 졸부를 떠올리면 '올드 머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충 짐작이 간다. 상속 재산이 많은 전통의 부자쯤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만의 현상, '조용한 명품'과 '올드 머니'한국에서 '올드 머니'들이 소비한다는 '조용한 명품'도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 '조용한' 명품은 그동안의 명품 소비 행태와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명품들은 아주 오랫동안 소비자들이 소지하고 착용한 물품이 고가임을 자랑하는 걸 도와주려는 듯 너나 할 것 없이 브랜드 로고를 자신들의 제품에 크게 새겨 내놓았다.

그러던 명품 업체들이 갑자기 겉으로 보면 무슨 브랜드인지 알 수 없게 만든 '조용한 명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당신들 같은 진짜 명품족들은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 서민들도 소비하는 초급 명품을 이제는 사지 말고 이런 조용한 명품을 사세요'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나는 니네들과는 다르다'는 점을 파고들면서 신종 유행을 일으키려고 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이런 '조용한 명품'이야말로 '올드 머니'들이 소비하는 제품군이라고 선전한다. 이제 점잖은 자리에 로고가 드러난 제품을 소지하고 착용하기가 주저될 정도다 .

진정한 '올드 머니' 탄생까지는 100년 걸려 어찌 되었건 영국인들은 최소 3대가 이어져온 가문이라야 제대로 된 '올드 머니'라고 인정해 준다. 

즉 영국인이 하나의 가문을 이뤄 성가(成家)하려면 최소 100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신사 한 명을 만드는 데는 3대가 걸린다(It took three generations to make a gentleman)'는 말을 연상하면 된다. 그러나 오래된 부자 가문이라고 모두 '올드 머니'가 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올드 머니'가 되기 위해선 100년이 걸리는 과정을 한번 살펴 보자. 영국에서 이름 없는 한 시민이 사업에 성공해 돈을 벌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시골에 큰 농장이 딸린 저택을 사거나 짓는 일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같은 영국 소설에 등장하는 장원(莊園·Manor House)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시골에 자리를 잡은 다음 주변의 가난한 이웃들에게 선행과자선을 베풀면서 명성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일단 하드웨어인 장원이 갖추어지면 이제 소프트웨어로 명성을 쌓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해도 주변 귀족이나 오래된 명문가들은 이 신흥부자를 잘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래도 신흥부자는 졸부 소리를 듣고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계속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 

물론 신분 상승을 위해서는 조심스럽고 신중하고 품위 있는 언행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일은 주위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물의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신흥부자가 돈자랑을 하듯 휘황찬란한 가구를 들인다든지 고가의 옷이나 장신구를 하고 다니면 좁은 시골에서 금방 소문이 나서 이웃 명문가들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안과 장원에서 일하는 하인들과 자신의 농장에서 품삯 일을 하는 농부들을 잘 대해 주어야 한다. 

흉년이 들면 소작인들에게 소작료를 줄여주는 등 아량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올드 머니 되기'는 어렵고 고달프다. 자신의 돈도 맘대로 못 쓰고 사치도 제대로 못한다.

'올드 머니'의 세 가지 조건자식을 명문 사립학교에 보내서 훌륭한 시민으로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훌륭하게 교육을 받더라도 지방 유지 가문들은 제대로 인정을 안 해준다. 

이유는 무식하고 근본이 없이 돈만 많은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운 교육이 어쩔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아무리 바깥 교육을 잘 받아도 가정교육으로 완성이 되어야 하는데 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 없어서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골 신흥부자들은 자식을 기숙사립학교에 보낸다. 거기서 혹독한 신사 교육을 주야로 받게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손자대에 가면 진짜 달라진다. 

가정교육이 시원찮아 인성은 훌륭하지 않으나 그래도 바깥 교육이라도 잘 받은 아버지로부터 가정교육을 받은 손자가 드디어 신사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된다. 이쯤되면 이웃 명문가들도 드디어 인정을 해준다. 

그동안 100년의 세월이 흘렀고, 대대로 동네에 기여와 자선을 하는 등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선행을 봐서 손자는 드디어 동네 명문가 사교계에도 등장할 수 있게 된다. 동네 각종 클럽 회원도 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신사와 명문가는 3대, 즉 100년이 걸려서 길러진다. 하나의 '올드 머니'가 탄생하는 것이다. '올드 머니'라는 타이틀이 단순히 오래된 부자라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오랜 시간 명성을 쌓아야 얻을 수 있는 명예이다. 그래서 영국인들이 쓰는 '올드 머니'라는 단어에는 오래된 가문에 대한 일종의 존경이 담겨 있다. "그 집안은 올드 머니야"라고 한다면 "그 집안은 오랫동안 선행을 베풀고, 언행도 훌륭하게 해온 집안"이라는 의미다.물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속성 코스로 '올드 머니'를 이룰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자신의 동네에서 꾸준히 선행을 베풀고 자선에 참여하고 행실을 바르게 하는 노력을 하다 보면 어떻게 왕실에 소문이 들어가 왕으로부터 기사급 수준의 서훈을 받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일단 신분상승의 첫 단계는 성취한 셈이다. 

이 정도 되면 지방 유지들은 그동안의 노력이 가상해서 사교계의 말석에 끼워준다. 

거기서 더욱 행실을 조심하고 자신의 부를 이용해 자선과 선행의 노력을 열심히 하다 보면 아주 드물게라도 공작·후작·백작·자작 작위의 말석인 남작 작위를 드디어 받게 된다. 

즉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는(establish)' '완성된(established)' '가문(establishment)'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영국의 기득권층을 영어로 'establishment'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이렇게 영국의 '올드 머니'들은 결코 돈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랜 세월 동안 자선을 베풀 수 있는 재력은 기본이고 그 재력을 사용해 실제 자선활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부를드러내는 품위 없는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재력, 선행, 품위의 3가지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영국의 '올드 머니'들은 자신들의 부가 밖으로 드러날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생활을 '자신들끼리' 조용하게 이어나갈 뿐이다. 

그래서 영국의 '올드 머니'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일반인들이 잘 모른다. 사교클럽도 아주 엄격하게 회원을 고르고, 골프나 운동도 프라이빗클럽에서 멤버들하고만 한다. 손님들도 일반 식당이 아닌 클럽 식당에서 주로 만난다. 

패션도 절대 눈에 띄지 않는 무채색 계열의 옷들을 입고 장신구도 화려한 것들을 착용하지 않는다. 

넥타이도 명품 브랜드를 매지 않는다. 대개 자신이 졸업한 학교, 자신이 속한 클럽, 자신이 후원하는 자선단체 등과 연관된 넥타이를 맨다. 고가의 명품 브랜드 로고가 밖으로 보이는 넥타이를 매는 법은 결코 없다.

http://n.news.naver.com/article/053/0000039014?sid=104

진정한 올드머니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100년이 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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